• 2021년 회고

    2021. 12. 29.

    by. 나나 (ny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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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해져야 알 수 있는 것

     

    2021년의 끝. 매년 ‘벌써?’라며 놀라지만 올해는 더더욱 실감이 안 난다.

    시간은 참 무상히 흐르지만 그렇기에 위안을 받기도 한다.

    봄이 가지만, 다시 꽃피는 봄이 오는 것처럼. 해가 지지만, 다음날 또 해가 떠오르는 것처럼.

     

    나의 작고 반짝였던 한 해.

    완벽하진 않았지만 꽤 괜찮았어.

     

     

     

    작년도 의도치 않은 상황들로 인해 참 힘들었는데,

    올해도 고민으로 가득하고 눈물로 얼룩진 해였다.

     

    나는 항상 고민이 많았다. 그리고 불만도 많았다. 항상 ‘다음’을 생각했다.

    내가 있는 곳이 완벽한 곳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나 더 나은 곳을 염두에 두어야한다고 생각했다.

     

    연초에 대리 직급을 달았을 땐 참 묘한 기분이었다.

    지난주까지는 내 이름을 불러주던 사람들이 ‘대리님’이란 직급으로 부르고,

    매주 보고서에도 ‘대리’라고 기입하는 게 참 묘했다.

     

    신입사원 시절에는 대리님들이 그렇게 멋져 보였는데,

    이제와보니 연차는 쌓였지만 아직 모르는 게 많고 여전히 방황하는 단계라는 걸 알았다.

    부담감도 있었지만 책임감도 생겼고, 뿌듯하고도 알쏭달쏭한 기분이었다.

    확실히 연차가 쌓이니 주니어 시절보다 조금 더 멀리 볼 수 있게 됐다고 할까.

     

    하지만 그때 나는 정말 많이 ‘지쳐 있었다’.

    점심 시간에 다른 분들이랑 밥먹는 시간만이 유일한 즐거움이었고,
    주변에 다른 사람한테 인생의 의미가 뭐인 것 같냐고 많이 물었었다.

     

    나는 그냥 내가, 나의 상황이 싫었다.

    인정, 만족, 성취... 모든 걸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대체 언제까지 이래야 하지...?’라고 생각했다.

    왜 내가 여기 있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일의 효율은 떨어져 갔고 나는 낙담과 우울에 빠져들었다.

     

    그래서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면 ‘다시 예전처럼 열심히’ 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참 안타깝게도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기대보다는 두려움이 컸고, 매일 두통에 시달렸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여름.

    집에 가는 길에, 하늘은 파랗고 예쁜데 나는 왜 그렇지 못하냐며 울었던 기억이 난다.

     

     

     

    너무 힘들어서 아무나 붙잡고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심리 상담의 문을 두드렸다.

    부끄럽지만 그때는 그게 굉장히 ‘극단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부끄럽게도.

     

    처음 상담을 받으러 갔을 때 나는 미디어에서 봤던 것처럼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펑펑 울 줄 알았다.

    신기하게도 그렇진 않았다.

    오히려 가시만 가득 세운 채 썩 유쾌하지 않은 기분으로 끝마쳤다.

    그 후로도 한두달은 ‘상담을 왜 받는 거지’란 생각이 들었다.

     

    인생의 모든 게 두렵고 불안했다.

    이때 나는 정말 내가 미친 게 아닌지, 내 감정통제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닌지 걱정이 됐을 정도였다.

     

    블로그 글을 쓸 수 없게 됐다. 낯선 메일을 여는 게 무서워졌다.

    내가 패배자로 보였다. ‘예전처럼’ 해내지 못하는 내가 너무 미웠고 이 상황이 너무나 끔찍했다.

     

    모든 걸 ‘그만두고 싶었다’.

    늪에 빠진 것 같다. 길을 잃은 것 같다.

    그게 나의 심정이었다.

     

     

     

    그렇게 여름이 가고, 가을이 거의 끝나갈 무렵.

    문득 불어온 바람에 계절의 변화를 느끼듯,

    어느날 깨달았다.

     

    내가 나 자신에게 얼마나 가혹했는지.

     

    “이거밖에 못하다니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빨리 더 해!”

    “일단 하긴 했지만 이게 끝은 아니야. 더 잘해야 돼!”

    다른 사람이라면 시키지 않았을 일, 다른 사람에게라면 하지 않았을 말.

    하지만 나 자신이란 이유로 끊임없이 반복했던 짓.

     

    “숨 쉬어”

    그 의미를 이제야, 이제가 되어서야 깨달았다.

    나를 옥죄는 가혹함에서 벗어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달란 말이었다.

    내가 지쳐있다는 걸 받아들이고,

    내가 불안하다는 걸 알아달라는 말이었다.

     

    넘어지는 게 무서워서, 멈추는 게 두려워서,

    뒤에서 쫓아오는 게 무엇인지도 모른 채 끊임없이 달렸던 나.

    이제와 보니 뒤에서 달려오는 건 나 자신이었다.

     

    ‘넘어져도 괜찮다. 쉬어가도 괜찮다’는 상담 선생님의 말이 이해가 됐다.

     

     

    나는 포부도 크고 야망도 높은 편이다. 그래서 일에 대한 욕심이 크다.

    그렇기에 더 만족을 못 했던 걸지도.

    ‘여기보다 더 나은 곳’, ‘내가 더 만족할 수 있는 곳’이 이 세상 어딘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세상 어디에도 그런 곳은 없다.

    돌이켜보면 내가 ‘그러한 일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잘 안 될 수 있지만 그래도 한번 해보면 좋았을 텐데.

     

    나는 ‘완벽하게 행복한 상태’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상태는 존재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우리는 언제나 불완전하다. 그리고 그걸 받아들이며, 모자람을 인정하고, 그걸 보듬어 가며 살아간다.

    ‘완벽하게 멋진 사람’도 없다. 누구나 실수를 하고, 누구나 무지한 것이 있다.

    완벽주의 성향인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나’와 현재의 내가 완벽하게 일치하는 순간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 가까워지도록 노력하며, 그 노력을 하고 있는 과정에 만족하는 삶을 살 수는 있다.

    내 머리 위에 떠 있는 별처럼.

    나는 별이 될 수도 없고 별을 잡아 내 것으로 할 수 없지만, 별을 따라 걸을 수는 있다.

    별은 인도하는 빛이며, 그렇기에 나는 어둠을 무서워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다.

    삶은 잘 닦인 길이 아니므로 방황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어떤 길이로든 갈 수 있는 게 당연하다.

     

     

     

    항상 열심히 사는 삶. 완벽을 추구하는 삶. 나쁜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지쳐있는 상태에서, 마음이 다친 상태에서 그걸 몰라준 채

    ‘뭐하는 거야, 달리라고!’ 채찍질하는 건 아무런 효용이 없다.

     

    나는 스스로를 늘 비난해왔다.

    비난이 한순간 달리게 만들 수는 있지만 그게 반복되면 지친다.

    항상 나를 비난하는 사람이 옆에 있다면 얼마나 괴로운가.

    그게 벗어날 수도 없고 도망칠 수도 없는 ‘나 자신’이라면 더더욱.

     

    나는 시시포스였다. 힘겹게 밀고 온 돌은 중요하지 않았다.

    내게는 다시 밀고 올라올 다음 번 돌이 중요했다.

    스스로를 진심으로 칭찬해본 적도, 진심으로 만족해본 적도 없다는 걸 알았다.

    내 아이라면 결코 그런 말을 하지 않을 텐데. 

    성장이란 이름으로 스스로를 옥죄는 삶이었다.

     

    이제 나는 나를 알고, 나를 받아들일 수 있다. 나는 시시포스가 아니다.

    여전히 나는 불안감이 높고 사람이 무섭지만 ‘그럴 수 있다’.

    이제 나는 실수와 실패를 받아들이며 ‘그럴 수 있다’고 여긴다.

    이렇게 나를 알게 되니까 심리적인 게 참 크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가진 기질과 성격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사람에게 위안을 받고 위안을 주는 걸 좋아하지만

    사람을 무서워하는 모순적인 나.

    하지만 다른 이들도 저마다의 고민과 생각을 지니며 살아가고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굳이 겁먹을 필요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올 한 해는 심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약해졌기에’ 알 수 있는 것이 많았다.

    가장 약해진 순간에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니 다른 이의 약함을 비웃는 대신 이해하는 옹호자가 되자.

     

    그리고 이 순간까지 끝까지 나를 이해해주고 나를 받아들여준 사람들에게 감사하자.

    무한한 신뢰와 사랑으로 나를 받쳐주는 사람들이 있음에 너무나 감사하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멋진 인생이야.

     

    나의 인생은 어느 한켠에서 보면 실수일지도, 실패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 어딘가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아무렴 어때.

    인생에 완벽한 순간은 없다.

    완벽하게 옳은 선택도 없으며, 완벽하게 잘못된 선택도 없다.

    어떤 길을 걷든, 어디에 있든, ‘살아가는’ 모든 순간들을 받아들이자.

     

    고생했어.

    2021년은 충분히 멋진 한 해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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